인도네시아 길리 3섬 탐방기: 트라왕안, 메노, 아이르

길리 트라왕안

발리섬에서 1시간 30분여 배 타고 들어와야 하는 길리 트라왕안 옆으로는 길리 메노, 길리 아이르라는 섬들이 이웃해 있다. 섬은 작다. 주민은 8000여 명. 자전거로 1시간이면 섬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이 섬에는 자동차가 없다. 오토바이도 없다. 이동수단은 ‘치모도’라 불리는 마차와 자전거뿐이다. 본래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있었지만 마을 주민들의 합의로 없앴다고. 

아참, 개도 없다. 길리 섬 주민들은 이슬람교를 믿는지라 개를 불길하게 여겨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관광객들을 위해서 섬에 개를 들이지 않기로 마을회의에서 결정했다고 한다. 비록 발리에서 경험한 개들은 사람에게는 무신경하고 순했지만 말이다.

길리의 쓰레기통

‘ORGANIC’ 분류가 따로 있는 길가의 쓰레기통에서 이 섬의 컨셉을 알 수 있다. 8-90년대까지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소란스럽고 번쩍거리는 파티 섬의 이미지였지만 바다속 산호가 사라지는 등 길리의 자연환경이 훼손되는 것을 안타까워한 프랑스인 다이버의 노력으로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음식은 입에 잘 맞고, 뜨라왕안에는 값싼 야시장이 있어 좋다. 평소 꼬치구이를 잘 안 먹는데 ‘사테이’라 불리는 여기 꼬치구이는 맛있다. 무엇보다 자동차 소리가 없는 게 가장 좋다.

길리 섬의 석양

길리섬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 제2차 세계대전 때 포로수용소가 세워진 적이 있었을 뿐, 그 이전과 이후에도 무인도였다고 한다. 1970년대 인도네시아 정부가 관광산업을 진흥시킬 목적으로 죄수 300명을 이주시켜 섬 개간을 시킨 것이 지금 길리 섬의 시작이라고.

길리 메노

길리 메노로 이동. 길리 3섬 중 가장 작고, 사람이 적은 섬이다. 발리의 우붓에 머문다면 가장 많이 들을 말은 아마도 “딱시! 딱시!”일 것이다. 길리 트라왕안에서는 “머시룸”이란 말이 귀에 익게 될 테고. 아, “브라더”란 단어 역시(트라왕안에서는 ‘머쉬룸’이라는 향정신성 약물로 호객하니 조심해야 한다). 길리 메노는 좀 다르다. “헬로우”. 이것이 지난 이틀간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던 듯싶다. 딱히 호객하려는 의도도 없다. 다른 곳에서와 달리 이 섬은 관광객이 지나가도 대체로 무심하다.

대신 이 곳 사람들은 음악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라이브 밴드의 연주 실력이 수준급일뿐더러 어딜 가나 기타를 둘러매고 뚱땅거리는 사람들이 꼭 있다. 어느 날인가 한 식당에 들렀더니 식당 직원들이 젬베며 기타를 하나씩 들고 와서는 반주에 맞춰 저희들끼리 떼창을 부르기 시작한다. 정식 공연인가요? (수줍게 웃으며) 아니오, 그냥 우리 취미에요. 삼삼오오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니 듣기 좋았더라. 손님은 우리뿐이었지만. 어쩜, 운이 좋았지.

길리 메노에서 바라본 바다

메노의 경우, 중국인과 일본인은 섬을 많이 찾지만 한국인은 소수라 한다. 그럼에도 한류의 위력을 실감.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먼저 한국 드라마와 영화 얘기를 꺼내며 재밌게 봤다는 섬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블랙핑크? 식당 아저씨 딸이 좋아한다던데, 잘 몰랐어서 미안합니다. 기껏 반가워해주셨고만.

길리 아이르

길리 메노에는 어찌나 사람이 없었던지 아이르 항구에 오종종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고선 “와, 여긴 사람많네”란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 길리에서의 나날은 똑같다. 바닷가 식당 한 자리를 전세 내다시피하여 종일 죽치고 있기. 해수욕하다가 지치면 책 읽고 멍 때리다 다시 해수욕을 한다.

길리 아일랜드의 바다

우붓에서는 그런 경우가 잘 없었는데 길리 섬 사람들은 순박하다 해야 할지 셈이 흐리다 해야 할지, 자꾸 돈을 덜 받으려 한다. 저기요, 방도 업그레이드했고 주스도 더 시켜먹었거든요? 그때마다 일러주어 지불은 제대로 했다. 이래서야 셈 빠른 중국 사람들 상대가 되겠나.

잘 몰랐는데 인도네시아를 비롯 동남아에서 중국인들은 서구에 빗대자면 유태인과 비슷한 포지션인 것으로 보인다. 화교들이 동남아 각국의 경제 부문을 꽉 잡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때문에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대입 시험에 페널티를 주는 등 화교에 대한 차별 정책까지 시행한다고. 과거 발리에서는 화교대량학살 사건이 있기도 했고.

길리 아이르 앞 숙소 풍경

아이르 숙소 창 너머 작은 목초지에는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야자수가 바람에 일렁이고, 제푼 플라워 트리가 아침마다 흰 꽃을 떨군다. 바다가 바로 곁이고 조용하기까지 해서 조식 후 오전은 테라스에서 보낸다. 무엇보다 선풍기 있는 숙소에서 에어컨 있는 숙소로 옮겨오니 솔직히 좋다! 

지구상의 유일한 휴양지

발리 섬을 둘러볼 것이 아니라면 길리 행은 발리보다 롬복에서 가는 것이 시간이 훨씬 덜 소요되니, 롬복에서의 출발을 고려할 것. 길리 3섬은 바닷빛이 정말 예쁘고, 스노클링을 비롯한 각종 해양레저를 값싸게 체험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자동차가 없는 섬이라는 점은 휴양을 위한 완벽한 조건!

길리의 바다

보통은 길리 트라왕안만에만 머물다 가지만, 정말 사람이 적은 길리 메노에 체류해 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그냥 하루 정도 시간을 내어 다녀와서는 섬의 진면모를 알 수 없다. 트라왕안은 가장 큰 섬이고 유명한 만큼 시끌벅적한 파티섬의 면모가 남아있지만 길리 아이르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치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휴양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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